다소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울철의 건조하고 차가운 혹독한 시기를 잘 견뎌낸 식물들은 비축해 놓은 에너지를 보란 듯이 뽐내면서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꽃망울 터뜨리며 봄의 생명력 넘치는 햇살과 따뜻한 바람을 찬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봄철에 꼭 먹는 음식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봄나물! 겨울철 얼어있던 땅에서 숨죽이고 에너지를 모으고 있던 식물들은 따뜻한 기운으로 녹아내리는 대지를 뚫고 저마다의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냉이, 달래, 민들레잎, 씀바귀 등등 봄나물의 대표주자들의 공통의 맛은 바로 쌉싸름한 맛. 쌉싸름한 이 맛은 겨울철 떨어져 있던 간의 기운을 보충해주면서 새콤달콤하게 무쳐내면 절로 입맛이 솟아나오면서 봄철의 나른함을 이겨내게 한다. 그렇다! 봄은 겨울에 잘 비축해 놓았던 신장의 에너지를 바로 간으로 보내는 시기로서, 일 년을 잘 살아낼 준비를 해야 하는, 간을 정화(디톡스, detox)하는 계절이다. 여기에 디톡스의 대표주자가 있으니 바로 이것은 새콤한 맛의 대명사 레몬!
지금은 스페인이나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재배되는 레몬이지만, 레몬의 원산지는 아마도 북부 미얀마 혹은 북동부 인도, 파키스탄 유역이라고 추정된다. 레몬은 이후 고대 로마로 전파되었고, 고대 로마에서는 이 레몬을 매우 귀한 것으로 여겨서 의학적, 장식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레몬은 중동 아랍인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전파되었는데, 아마도 레몬이라는 말은 아랍어인 laymun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 전파된 레몬은 이후 이탈리아에서 기원후 1,000년 경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이탈리아 남부에서 재배되다가 지금의 스페인 지역으로 13세기에 전달되어 본격적으로 대규모 농장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재배된 레몬은 북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하였으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그의 첫 항해 때인 1492년에 레몬의 씨앗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가서 지금의 아이티(Haiti)와 도미니카 공화국 영역인 히스파니올라(Hispaniola)에 심게 되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스페인, 이탈리아의 바닷길 장악은 이후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동양 무역권을 장악하는 등 해상무역의 우위를 점하게 됨으로써 판도가 바뀌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그들의 역사에서 황금기(Golden Age)라고 불릴 정도로 부와 권력을 축적하게 된다. 부가 모이는 곳에는 당연히 신흥 부상계급이 있으니 바로 상인들이 급부상하게 되었고, 부가 축적되는 계층은 마지막에는 반드시 미술을 즐기는 계급이 된다. 북유럽인 네덜란드는 추운 날씨의 연속으로 따뜻한 지방에서 유래하는 레몬을 기르기에는 적합한 날씨가 아니다. 하지만 돈이 많았던 계급들은 자신의 저택에 온실을 짓고 레몬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사실 레몬은 기르기에 쉬운 식물은 아니었다. 레몬은 과실을 맺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작물인데다가, 과실이 열린다 하더라도 그것을 먹고 에너지를 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그저 향기와 풍미를 즐기는 과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레몬은 그야말로 노동자 계급이 아닌, “부자들을 위한” 과일인 것이다. 급부상한 신흥 계급은 이국적인 레몬에 매료되었고, 당시 중산층을 위한 유명한 요리책인 〈The Sensible Cook〉(1669)에는 레몬을 활용한 29개의 레시피가 다양하게 소개되기도 하였으니, 당시 네덜란드 가정에서 레몬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 가정의 벽에 장식되는 그림들은 스틸라이프(still life)라고 불리는 정물화들이었다. 15세기 종교개혁의 성공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 걸맞는 검약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은 종교화로 집안을 장식하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물들, 예를 들면 과일, 꽃, 동물, 책, 일상의 풍속, 음식, 죽은 사냥감, 풍경 등이 그려진 그림들로 벽을 장식하게 된다. 이러한 정물화의 주제들 중에서도 단연코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레몬”인 것이다.
빌럼 클라츠 헤다, 〈도금잔이 있는 정물〉, 1635년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에는 일상적인 친근한 소재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훈이 각각의 사물에 숨어 있게 되는데, 이것을 “알레고리”(allegory)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레몬의 알레고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선 레몬을 그림으로써 화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사물을 실제처럼 보이게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기량을 뽐낼 수 있었으며, 이를 주문한 후원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사치스러움, 그리고 고급진 취향을 은근히 자랑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레몬은 단면이 잘린 상태도 많이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모습은 껍질이 절반 정도 벗겨진 모습이다. 이러한 양식을 가장 최초로 그린 사람은 빌럼 클라츠 헤다(Willem Claesz Heda)로서, 그의 작품 〈Still Life with a Gilt Cup〉(1635)에는 화려한 베네치아의 유리 고블렛, 동양에서 수입한 실크 테이블보, 사치스러운 음식인 굴, 부의 상징인 레몬이 그려져 있다. 때로는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청화백자에 레몬이 한가득 담긴 그림도 있었으니, 신흥 부유층은 자신이 주문한 그림 안에 은근슬쩍 그들의 사치스러움과 부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껍질이 반쯤 벗겨진 레몬은 그 레몬껍질을 벗기고 있었던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상징함으로써 흘러간 시간과 사치스러움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한편 겉모습의 화려한 색채와 향기로 매혹되는 레몬은 실상 맛을 보자면 너무나 신맛과 쌉싸름한 맛이 강하여 감히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따라서 레몬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그리고 즐거움의 탐닉이 가져오는 결과를 경고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레몬은 당시 달콤한 포도주에 약간의 새콤함을 더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확한 비율로 레몬의 양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이는 삶의 태도로 연결되어 삶에서의 절제의 습관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야코프 판 휠스동크,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 1620~40년경 · 게티 미술관
우리나라도 한때 레몬은 구하기 매우 힘든 과일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제주도에서도 재배하여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에센셜 오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레몬의 껍질을 사용하지만, 레몬제스트를 사용할 때 외에는 주로 우리는 레몬즙을 요리에 사용한다. 레몬즙은 괴혈병 예방 효과가 있어서, 비타민 C를 몰랐던 대항해 시대에도 영국에서는 10일 이상 항해할 경우에는 선원들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레몬즙이나 라임즙을 선적하도록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다. 레몬은 또한 디톡스, 이뇨작용도 풍부하여 급성 류마티즘, 급성 약물중독에서 사용되었다. 국소부위 수렴(astringent) 효과도 있어, 목이 부었을 때 가글로 사용하거나 출산 후 출혈에도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딸꾹질, 황달, 심장 두근거림에도 사용되어서, 예로부터 의학적으로 유용한 과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레몬즙 덕분에 신선한 봄 채소에 풍미 가득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레몬으로 절제의 미덕을 다하여 정확하게 새콤한 맛을 돋운 뒤, 약간의 이국적인 허브들로 풍미를 더하면 봄철의 나른함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